[워케이션 후기] 어쩌다양구 ④
: 양구에 사는 거, 어떠냐고요?
워케이션을 한 지 한 달을 바라보던 3월 중순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어린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듯 저는 양구에서의 모든 경험이 신기하고 또 새로웠습니다. 24년간 살았던 부산에서도, 하다못해 6개월 살았던 서울에서도 이런 일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양구 청소년 수련관이 방치된 자전거들
먼저, 자전거를 빌릴 방법이 없던 일입니다.
사진 속 자전거는 .... 아쉽게도 빌릴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전거 대여사업이 코로나 이후로 중단되었는데, 그 이후로 여전히 사업을 시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이 아주 좋은 주말이고,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너무나도 타고 싶었습니다.
아! 자전거는 양구 한반도 섬에서도 잠깐 대여사업을 진행했었습니다.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한반도 섬 역시 현재는 대여사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대여하고 다시 반납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거나 타고자 하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워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애써 저를 다독였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도 자전거는 .... 탈 수 없었습니다.
한적하고 드넓은 공원과 아름답게 조성해 둔 자전거길을 두고 자전거를 타볼 수 없다는 사실은 관광사업을 하러 온 저에게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 서천 레포츠 공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좋은 날씨를 즐기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서천에서 물놀이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물놀이 한다는 건지 양구의 여름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였습니다.
▲ 양구 배꼽제빵소 빵
빵집 겸 카페인 '배꼽제빵소'에서 빵도 사 먹었습니다.
배꼽제빵소는 양구특산물로 빵을 만들기도 하는데, 시래기 시오빵(소금빵)은 정말 맛있으니 꼭 한 번 드셔보세요!
양구 시래기는 정말 부드러워서 제빵에 사용해도 좋은 것 같았습니다.
주말에는 집에서 먹을 음식을 사야 했는데, 춘천 롯데마트에 갔습니다.
춘천에는 버스와 택시가 많고, 양구 마트에서 음식을 사서 집에 걸어가는 것보다 양구 터미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것이 덜 걷는다는 사실이 저희를 춘천으로 이끌었습니다.
엄청난 식재료를 사 들고 양구에 온 저희는 아무도 없었던 인생네컷에서 그날의 우리를 기념했습니다. 알고 찍은 것은 아니지만 양구에서 저희가 해야 할 일들이 적힌 문구와 사진이 잘 어울려 참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이날은 제가 양구에서 뭔가를 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DMO 네트워크 사업설명회가 있었던 날입니다. 3주 동안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만나 뵈었던 분들이 저의 한 마디에 한자리에 모여 주셨으니까요. 물론 당연히 DMO의 사업 방향이 궁금하고, 또 지향점이 맞아서 오신 분들도 계시지만 그 속에는 저의 조그만 노력과 시간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앞으로도 양구를 위할 뿐 아니라 저를 위해서도 양구에서 맡은 바를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팅 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반드시 실현해 믿고 함께 해주시기로 한 분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 양구 밤나무집 식당 민물회
태어나서 민물회를 처음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바다 옆에 살아왔던 저는 연어와 같은 색을 띠는 생선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민물고기인 송어와 향어 그리고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자색고구마 튀김은 바다회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씻어주었습니다.
▲ 양구 편의점
아! 양구에 살아서 가장(?) 좋은 점은 편의점 신제품을 바로바로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 나온 것은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저는 대도시에서 신제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양구는 다릅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다 먹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될 정도입니다.
▲ 양구 '서울식당' 제육볶음
양구읍 '서울식당'의 제육볶음입니다. 이 모든 반찬과 메인메뉴에 된장찌개까지 포함해서 1인 만 원입니다. 안 믿으실까 봐 메뉴판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 양구 '서울식당' 메뉴판
먹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신선한 반찬들과 다양한 음식들은 아마 서울에선 '역대급 반찬 혜자 맛집!'으로 소문나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서울 같지 않은 서울식당입니다.
양구는 이런 식당들이 많습니다. 물가가 비싸고, 군인에게 더 받는 동네라는 말은 더 이상 양구의 수식어가 될 수 없습니다.
▲ 양구군청 옆 곽태영 선생 의거 기념비
3월 초에도 여전히 눈이 녹지 않은 군청 옆길에는 곽태영 선생 의거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곽태영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하려고 했지만, 미수에 그쳤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 장소가 양구였다는 것은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양구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 놀라곤 합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안개 때문입니다. 양구의 지형 때문에 안개가 많다고는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양구의 아침 안개는 늘 놀라운 현상입니다.
3월의 양구 안에서 저는 봄을 그리워했습니다. 부산에서는 2월 말이면 개나리, 3월 초면 목련과 벚꽃이 피어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양구에서는 하다못해 잔디조차 자라지 않습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오늘은 피었을까 주변을 둘러보는 제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3월은 봄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양구에서 못 본 봄을 부산에 잠시 내려가 즐기고 왔습니다. 부산에 내려가서 제가 한 첫 마디는 "왜 이렇게 덥지...?"
지난 에세이에서 양구에서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기억하실까요? 양구 운전면허학원은 친절하고 다 좋지만,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필기시험을 못 친다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정도 계획이 잡히는데 그마저도 인원이 10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시험이 취소됩니다. 그래서 춘천이나 서울에서 시험을 봐야 합니다. 평소에는 일하고 회의하느라 시험을 못 치러 갈 것 같아서 부산에 내려간 김에 치고 필기시험을 단숨에 합격했습니다ㅎㅎ
양구에 사람이 없다는 건 관광지에, 길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는 크게 느끼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양구에 정말 사람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양구로 돌아오자마자 공정관광지방정부협의회 임시총회 및 고향사랑기부제 벤치마킹 일본 연수 성과공유회 진행 보조도 했는데 이날 저녁엔 오골계를 먹었습니다. 시도해 보기 힘든 비주얼과 처음 먹어보는 맛이 정말 정말 신기했습니다. 껍질도 검은색이라니.. 양구에는 오골계 집이 좀 있습니다. 맛은 비밀입니다. 오셔서 드셔보시고 궁금증을 해결하시기바랍니다ㅎㅎ
▲ 양구 수목원
다음날엔 양구수목원에 방문했는데 청설모 밖에 볼 수 없었던 도시에서 자랐던 제가 다람쥐를 실제로 본 일은 놀라울 따름이습니다. 다람쥐라니 .. 그것도 많다니 .. 뿐만 아니고 양구에는 일반 비둘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멧비둘기가 있습니다(이도 많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 '여기는 정말 자연이구나'하고 느낍니다.
▲ 양구 생활민원 기동처리반
양구에서 큰 도움을 받은 고마운 일도 있습니다. 집에 형광등이 나가서 잘 보이지 않는 채로 산지 약 2주가 돼가던 시점에 저희끼리 고쳐보겠다고 멀리까지 걸어가서 형광등도 사 왔습니다. 돈만 날렸습니다. 도저히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인구정책팀 조인선 팀장님께 요청했고, 팀장님은 양구군의 생활민원 기동 처리반분들과 지나가시던(?) 김영일 주무관님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아직 형광등을 쓰는 데가 있다고..?"하시며 집 전체를 LED 등으로 교체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LED 등은 김영일 주무관께서 사주셨습니다. 부경대를 나왔다고 하니 "부경대의 '누구누구' 알죠?"라고 하셨던 놀라운 질문도 잊을 수 없습니다.
▲ 집 형광등 교체중
사실 제 주변에는 '타지 시골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참 고생이다'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99.9%입니다. 저는 여자고, 또 젊으니까요. 요새 유행하는 워케이션이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워케이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냥 부럽지만은 않은 워케이션이랄까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양구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저에겐 새롭고 신기한 일입니다. 고생이라고 하기에도 주변에서 수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니 특별한 고생은 없습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경험입니다. 대한민국 제주도를 제외한 최남단 부산에서 최북단 양구로 올 줄은 22년 12월의 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더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위에 설명했지만, 저는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너무나도 새로운 양구는 신기한 거리들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지 않고 편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답할 겁니다.
"양구 사는 거,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