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양구
 

 

[워케이션 후기] 어쩌다양구 ⑨

: 양구가 진짜 없어지면 어떡하나요?

 

저는 양구에서 벌써 9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겨울이 코앞까지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양구에 처음 왔던 2월의 그날이 가끔 생각나곤 합니다. 너무 추웠고,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던…. 하지만 이제는 겨울이 될 내일을 기다립니다. 양구 사람들은 눈이 오는 것을 극도로 피하고 싶어 하지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저는 눈밭(?)에 굴러보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날씨 앱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눈이 와서 겨울왕국이 된 양구도 얼른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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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에는 양구읍 공수리에서 주막할매축제가 진행되었습니다. DMO 네트워크로서 성실히 활동해 주시는 공수리 함광복 이장님이 DMO사무국에 축제 기획과 관련하여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밤낮, 주말 할 것 없이 축제 운영을 도왔습니다. 주막할매축제는 공수리 마을 주민들이 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직접 기획, 준비, 운영까지한 축제입니다.

공수리 마을은 체류형 관광에 관심이 많고, 그 시작으로 여러 가지 축제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양구 공수리에 와야만 즐길 수 있는 '주막할매축제'는 많은 분이 방문해 주셨고 양구 전역에 소문난 축제로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로컬 프로그램의 중요한 점은 '우선 우리가 즐기고 재밌으면 된다'고 했던 한 강사님의 말씀이 생각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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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엽전으로 순금 한 돈 추첨권을 교환해 주는 일을 했고, SNS 이벤트와 인생샷 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해 갔습니다. 하루 종일 엽전을 얼마나 세었는지... 축제가 끝나고 손이 떨려 삼겹살을 힘겹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 주민들이 재밌어해서 행복했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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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양구에 살면서 느낀 것은 그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다른 지역에서는 봄에는 따뜻, 여름엔 덥고, 가을은 쌀쌀하며 겨울은 그저 추운 날씨로 기억되곤 합니다. 근데 양구는 봄에 알록달록 꽃들, 여름엔 푸르른 나무들, 가을은 알록달록 단풍, 겨울에는 하얀 세상이 아름다운, 기온보다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오는 곳인 것 같습니다. 음, 다시 말해 계절이 느껴지는 것 보다 계절을 볼 수 있는 곳 같습니다. 길가에 놓인 가지각색의 호박들과 노란 은행나무들의 모습들이 제 의견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으신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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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 주에는 양록제가 있었습니다. 원래 양록제에서는 '금강산 가는 옛길 걷기대회'가 두타연에서 진행됐다고 하는데 올해는 한반도섬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평소에 가보지 못한 곳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기도 했지만, 경품 암소 한 마리를 실제로 보기도 했던 신기한 날이었습니다. 다음엔 문제없이 금강산 가는 옛길 걷기대회가 개최되어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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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대회 다음날은 DMO네트워크의 다과를 포장하여 양록제 부스에서 나누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포장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걸려 힘들기도 했지만, 양구만의 독특한 자원을 양구 사람들에게 느껴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양구전통한과, 곰취 찐빵(산호박식품), 시래기 쿠키(펀치스11-2)는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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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는, 1년 반 만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한 달 만에 휴가를 내고 부산에 내려갔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양구와 부산은 거리가 멀고 교통편을 몇 차례 갈아타야 해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저는 이동하다 감염된 것 같았습니다. 약 2주 정도를 끙끙 앓았는데, 코로나는 이제 격리 의무가 없어서 양구로 돌아와 일을 했습니다. 만나는 양구의 모든 분이 마치 본인의 가족이 코로나에 걸린 것처럼 걱정을 해주시고 얼른 나으라고 위로해 주셔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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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주로 많이 쓰는 모양 펀치기를 아시나요? 집 가는 길에 만난 길의 한 부분은 마치 단풍잎 모양 펀치기로 바닥을 뚫어 색칠해 둔 것처럼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해 바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는데, '내가 양구를 이렇게 좋아했던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그렇게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바닥에 떨어진 단풍을 보며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잠시 이상했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이미 양구에 푹 빠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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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위 사진들은 지금보아도 꽤 이쁩니다. ㅎㅎ 가을이라는 단어를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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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는 해안면에서 시래기사과축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시래기를 말리는 모습도 처음 봤고, 사과가 수상을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구 사과로 만든 사과잼 와플은 정말 정말 맛있으니 꼭!! 드셔보시길 강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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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섬은 제가 처음에 방문했을 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올 3월에 방문했던 한반도섬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죠.

'여기에 대체 누가 오는거지..?'

어느날 오후 한반도섬에 산책하러 갔는데 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들 여기 와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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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세이에서는 양구 맛집 두 군데를 추천합니다. 우선, 양구 손냉면(구 남면가든)! 사진은 물냉면과 메밀전병인데, 비빔냉면이 진짜 맛있습니다. 100% 고구마로 만들어서 질기지도 않고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꼭 방문해 보세요. 저는 냉면을 밥으로 먹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던 사람인데, 여기 냉면을 먹고는 또 점심으로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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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양구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한우생닭치킨'입니다. 물론, 치킨집인데 이름에 왜 한우가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양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찐 맛집입니다. 양만 많은 게 아니라 맛도 보장합니다. 특히 닭발도 같이 튀겨주시기 때문에, 더 특색있고 맛있죠. 여기에 생맥주를 곁들이면, 그날 업무 스트레스는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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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에는 여러 출장업무가 많았습니다. 양구사랑아카데미 프로그램 하나로 양구 1박 2일 워크숍 인솔을 진행했습니다. 수도권이 고향인 친구들이 양구에 와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가게 되었다는 후기를 들었을 때, '이 일을 평생 해도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양구가 맞는 걸까요? 새로운 사람을 양구에 데려오고 양구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은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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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양성교육 선진지 답사로 강원도 정선 고한읍 마을호텔 18번가에 다녀왔습니다. 마을 주민끼리 작고 사소한 것부터 바꾸기 시작해 협동하여 현재는 각 정부 부처에서 상도 받았다는 것이 환경적인 운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그사이 숨겨진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양구에서도 주민들이 협동하여 무언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양구 특징과 연계하자면, 양구는 동네가 좁아, 우스갯소리로 두 다리 안에 양구 모든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좁다는 것은 분명히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합이나 협력을 이끌어내기는 쉬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협력을 누가 이끌어가는지가 중요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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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는 매월 다양한 공연이 진행됩니다. 모든 공연이 무료로 진행됩니다. 저는 가능하면 모든 공연을 보러 가는데요,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료로 하는 공연도 보러오는 사람이 적구나'

양구 사람들은 2만여 명. 객석 수는 약 300석인데요. 관람하러 오지 않는 이유에는 다양한 개인적인 사유들이 있겠지만, 사실 지역에서는 '지역은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들다'는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을 유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지역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들다는 인식은, 지역민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민이 즐기지 않는 문화예술은 빈도가 적어지고, 없어질 겁니다. 반복되는 악순환이 그런 인식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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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양구에서 다양한 물음표를 마주하곤 합니다. 그냥 길을 걷다가도 질문이 떠오르곤 합니다.

지역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는 지역을 잘 알고 있는가?

지역의 이미지를 만드는 건 누구인가?

다른 지역도 양구 같은가?

양구의 가치는 무엇인가?

양구가 진짜 없어지면 어떡하지?

....

처음 양구에 온 건, 양구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였습니다. 지역이 없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왔습니다. 땅이 그대로 있는데, 왜 지역이 없어져?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지역이 없어진다는 건, 단순히 그 지역 이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플 때 지금보다 더 병원에 가기 힘들어지고, 사건 사고가 났을 때 경찰이나 소방관이 도착하는 데 수십 분이 걸리거나 오직 그 지역 주민을 위한 복지가 적어지거나 없어진다는 것, 내 고향을, 내 추억을 기억 속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불가피한 현상이라 정말 양구가 없어질 수 있지만,

 

진짜로 양구가 없어지면 어떡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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