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후기] 어쩌다 양구 ③
: 인정해야 할 것들과 인정(人情)이 많은, 그런 동네
양구에 오기 전, 저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여행하기 좋은 양구’를 찾아보자! 그 이유는 제가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 중부 운전면허학원 안전교육실 / 중부 운전면허학원 '중부'
그 꿈은 양구 입성 2주 만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둘째 주 주말에는 양구 유일 운전면허학원(중부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해서 안전교육을 받았습니다.
▲ 춘천역 /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다음 날에는 춘천에 갔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가본 춘천을 제가 왜 갔을까요? 봄맞이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양구에는 쇼핑센터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20대 여성이 양구에서 맞이한 첫 고난이었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놔둘 수는 없으니 춘천에 가서 쇼핑했습니다. 9시 막차를 타고 양구로 오는 길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파로호 육개장
▲ 양구 재래식 손두부
많은 생각을 하다가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주에는 양구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 두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파로호 육개장’ 그리고 ‘양구 재래식 손두부’. 예약하지 않고 가기에는 어려운 두 곳에서 기대보다 더 맛있었던 음식은 전날의 고민을 잊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 민통선 두타연 벌꿀 김귀만 대표 미팅
DMO네트워크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해 민통선 두타연 벌꿀 김귀만 대표와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만두 벌꿀에서는 벌꿀 체험을 준비 중이었고 네트워크 협의체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며 꿀차와 꿀 스틱 등을 나누어주시며 DMO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백토마을 / 백토마을의 고양이 / 상무룡 호수
오미마을의 박준이 사무장과 미팅도 진행했습니다. 사실 근처를 지나다 오미마을의 분교를 둘러보았는데, 그러다 갑자기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친절히 맞아주시고 함께 해주실 의사가 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 밀원식물연구원 이영기 대표 미팅
백토마을과 상무룡 호수도 들렸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양이를 제외하고는요.
밀원식물연구원 이영기 대표와 미팅을 진행했는데 꿀벌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대해 연구하시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밀원(꿀벌의 밥) 식물들이 생식보다는 생존을 택하고 그로 인해 밀원 식물이 사라져가고 있는 심각한 문제에 관해 설명하며, 원주민은 지역의 문제를 잘 집지 못한다며 외지인의 눈으로 지역의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 국토정중앙천문대 배태석 천문대장
▲ 천문대 천장 열리는 모습
국토정중앙천문대의 배태석 천문대장과도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배태석 천문대장은 양구 내 군민도 천문대를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도심에 살면서 일부러 별을 보러 가는 사람이 많았고,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양구에서는 별이 잘 보이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별 관측 시 미리 천장을 열어두고 준비해야 하므로 일반인은 잘 볼 수 없다는 천장이 열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 광치 휴양립
광치휴양림과 소양호 뱃길나루터 펜션, 꼬부랑 길도 가보게 되었는데
광치휴양림은 주말엔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무장애 나눔 길, 가족 여행객을 위한 놀이시설, 옆에 흐르는 계곡물, 아름다운 자연환경, 널찍한 시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소양호 뱃길나루터 펜션 노을 뷰, 꼬부랑길 노을 뷰
소양호 뱃길나루터 펜션과 꼬부랑 길은 너무 예쁜 호수 경치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가볼 결심이 잘 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일단 와본다면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구 안에서 살면 인정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
첫째, 운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양구를 돌아보기 힘듭니다.
둘째, 대형쇼핑몰이 없습니다.
옷이나 신발뿐만 아니라 양구 내 대형마트는 농협하나로마트뿐입니다.
그마저도 운전을 못 하는 저희에게는 난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양구 내 사람이 없습니다.
양구 인구 포함 관광객도 없습니다.
양구 구석구석을 돌아본 결과, 주말에도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같은 일도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성격이 긍정적이고 꽤 낙천적인 편이라 위 세 가지를 엮어 제가 현재 맡은 양구 DMO사업과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운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내기 불편하다는 점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구 내 인구 대부분 차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운전하기 위한 도로가 잘 닦여있다는 것인데 양구에는 사람이 없으니까 초보운전자가 여행 오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없고, (출퇴근 시간 외에는) 차도 많이 없고 심지어 신호등도 몇 없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요?
▲ 양구 5일장에서 구매한 고구마로 칩 만들기 실패 현장 / 시장에서 구매한 체리와 과일들
대형 쇼핑몰이 없는 것은 조금 불편할 순 있지만, 5일장에서 직거래로 구매해 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면서 믿고 먹을 수도 있고 시장도 하나의 체험 거리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쇼핑을 덜 하게 되면서 돈도 조금 아끼게 되는 것 같고요. 지금까지 맥시멀라이프를 살아왔던 것 같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또 사람이 없고, 관광객이 없는 것은 양구 입장에서 씁쓸한 현실일 수는 있지만 반대로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여행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고 바쁜 일상을 벗어나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양구를 바라보았는데,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양구에 오기 전에,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걱정을 해주었고 마냥 긍정적이었던 기대감이 조금의 걱정거리들로 쌓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요청한 미팅과, 갑자기 찾아간 곳에서 늘 친절히 맞이해주며 커피 한 잔이라도 내어주시려고 합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것마저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또 다른 대안도 같이 생각해줍니다.
양구에 와서 보니, 양구, 이 동네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인정해야 할 것들과 인정(人情)이 많은, 그런 동네입니다.